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으며, 범용 인공지능(AGI)의 등장이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세대가 직접 경험할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의 강연은 AGI가 가져올 사회·경제적 변화를 기술적 진화 과정과 함께 조망하며, 우리가 준비해야 할 미래의 모습을 제시합니다.
생성형 AI의 혁신과 한계
2017년 구글이 제안한 트랜스포머 알고리즘은 인공지능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채GPT의 'T'가 바로 트랜스포머를 의미하는데, 이 기술은 1950년대부터 60년 가까이 해결되지 않았던 자연어 처리 문제를 돌파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기계에게 문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30년간 인터넷에 축적된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한 결과 완벽하게 문법적인 문장을 생성해낸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인간조차 명확히 정의하지 못한 언어의 보편적 규칙을 기계가 스스로 발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파급력은 비제조업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1970년대 이후 50년간 단 1%도 올라가지 않았던 비제조업 생산성이 AI 도입으로 드디어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커서, 윈서프, 러버블, 볼트 같은 바이브 코딩 도구들은 코딩 생산성을 30~40% 향상시키며 실질적 효과를 입증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노동시장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교의 2024년 8월 데이터에 따르면, 채GPT 등장 이후 22~24세 신규 개발자 채용이 급감한 반면 40대 이상 경력직 일자리는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이는 AI 시대의 진짜 위기가 현재 일자리를 가진 이들이 아니라, 경력을 쌓을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미래 세대에게 있음을 보여줍니다.
콘텐츠 제작 영역에서도 혁신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구글의 보 3와 오픈AI의 쏘라 2는 텍스트 프롬프트만으로 고품질 영상을 생성할 수 있으며, 특히 일관성 유지 문제가 해결되면서 실질적인 비즈니스 활용이 가능해졌습니다. 다만 이러한 기술은 맨해튼 크기의 데이터 센터를 필요로 하며, 2025년에만 AI 기업들이 GDP 1% 이상을 데이터 센터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는 1880년대 철도 건설 이후 최대 규모의 인프라 투자이며, IMF는 이를 닷컴 버블보다 17배 큰 버블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샘 얼트만은 이를 '건설적 버블'이라 부르며, 버블이 터지더라도 구축된 인프라는 살아남은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GPU 기반 데이터 센터의 감가상각률이 5년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과거 철도나 광케이블과는 다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에이전틱 AI와 인터넷 패러다임의 전환
생성형 AI 다음 단계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에이전틱 AI입니다. 생성형 AI가 정보를 만들어내는 데 그친다면, 에이전틱 AI는 우리를 대신해서 실제 행동을 취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표 예약을 위해 적절한 앱을 찾고, 메뉴를 탐색하며, 결제 정보를 입력하는 모든 과정을 AI가 자동으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젠슨 황은 CES 2025에서 인식형 AI(2012년~), 생성형 AI(2022년~)에 이어 에이전틱 AI 시대가 2~4년 내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이는 비제조업의 대부분 지적 노동을 AI가 대체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지적 노동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2025년 10월 6일은 인터넷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이날부터 채GPT에서 앱 실행과 결제가 가능해졌는데, 샘 얼트만은 이를 "채GPT가 운영체제가 됐다"고 표현했습니다. 1969년 TCP 통신 기술이 완성됐지만 20년간 전문가들만 사용할 수 있었던 인터넷은, 1991~93년 팀 버너스리의 월드와이드웹과 마크 안드리슨의 모자이크 브라우저가 등장하며 일반인에게 보급됐습니다. 마우스 클릭이라는 직관적 인터페이스 덕분에 사전 교육 없이도 누구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채GPT는 언어라는 더욱 자연스러운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며,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기만 하면 AI가 알아서 적절한 정보와 앱을 찾아 문제를 해결합니다. 현재 900만 개 이상의 앱이 존재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어디에 어떤 앱이 있는지 몰라 활용하지 못합니다. 에이전틱 AI는 이 문제를 해소하며, 30년간 지속된 검색형 인터넷을 대화형 인터넷으로 전환시키고 있습니다.
피지컬 AI, 즉 휴마노이드 로봇은 에이전틱 AI 이후의 다음 단계입니다. 디지털 세상에서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는 AI도 결국 아날로그 현실에서 물리적 행동을 취하려면 신체가 필요합니다. 휴마노이드 시장은 조만간 자동차 시장을 능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제조업이 중요한 대한민국에게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기회입니다. 그러나 중국 기업들이 이미 부품의 70~80%를 자국 제품으로 구성하며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한 상황에서, 핵심 부품을 미국·독일·일본에 의존하는 한국의 현실은 심각한 과제를 안겨줍니다. 휴마노이드 분야에서 중국을 뛰어넘기 위한 전략적 투자와 기술 개발이 시급한 시점입니다.
경제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
AGI 시대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의 재편을 의미합니다. 샘 얼트만은 "AI는 하나의 기술이지만 AGI는 새로운 자본주의"라고 표현했습니다. 인류 경제사를 되돌아보면, 기원전부터 18세기까지 약 3,000년간 GDP 성장률은 0.1%에 불과했습니다.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증기기관이 등장하며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GDP 성장률이 0.5%로 증가했고, 인구 증가율을 넘어서며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20세기에는 교육 확대와 다양성 증가로 혁신이 가속화되며 GDP 성장률이 2.5%까지 상승했습니다. AGI 시대에는 연 20% 이상의 GDP 성장이 예측되는데, 이는 AI가 24시간 쉬지 않고 지적 노동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콥-더글라스 생산함수에서 보듯, 생산량이 노동 투입량과 자본 투입량의 곱으로 결정된다는 점입니다. AGI가 지적 노동을 자동화한다는 것은 지적 노동력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며, 결과적으로 노동의 단가와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반면 AGI 개발에는 경 단위의 자본이 필요하므로 자본의 가치는 급격히 상승합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한 명의 하이퍼 CEO가 국가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업률이 30~40%에 달할 수 있는 사회에서 이것이 과연 지속 가능한 구조인지는 의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사냥꾼 한 명이 가족을 먹여 살리고, 농부 한 명이 마을을 먹여 살리고, 앤드루 카네기나 헨리 포드, 정주영 회장 같은 기업가가 도시를 먹여 살렸듯이, 기술 발전은 한 사람의 영향력을 곱하기로 확대시켰습니다. 하지만 AGI 시대에 극소수가 다수를 부양하는 구조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실리콘밸리의 낙관론자들은 핵융합 에너지 실현, 인간 질병 정복, 우주의 기원 이해 등 AGI가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유토피아를 만들 것이라 주장합니다. 픽사의 영화 '월-E'처럼 AI가 모든 것을 처리하고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하지만, 그것이 진정 행복한 미래인지는 의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현재 직장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 경력을 쌓을 기회조차 얻지 못할 청소년과 어린이 세대입니다. 2022년 채GPT 등장 이후 신규 채용 시장이 붕괴하기 시작했고, 앞으로 10년간 우리가 할 수 있는 현실적 대응은 자본을 축적하는 것뿐이라는 냉정한 결론이 도출됩니다.
김대식 교수의 강연은 AI 기술의 발전 경로를 명확히 제시하며 경제·사회적 파급 효과를 설득력 있게 분석합니다. 다만 실리콘밸리 중심의 낙관론에 치우쳐 인간 존재의 의미, 윤리적 한계, 디스토피아 가능성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AGI 시대의 진정한 경쟁은 인간 대 기계가 아니라, AI를 더 잘 활용하는 인간들 간의 경쟁이라는 통찰은 명확하지만, 그 경쟁에서 소외될 다수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과 윤리적 기준 마련이 시급히 논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2S24WTSo06U?si=c2HGt5G5UIA6DiC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