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심히 살았는데 왜 안 될까 — 능력주의가 숨긴 진실
5년 넘게 준비했습니다. 바닥부터 제빵을 배우고, 월급을 모으고, 인테리어를 직접 공부해서 단가를 낮췄습니다. 오픈 두 달 전이 됐을 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전 세계 최대 밀 곡창지가 우크라이나입니다. 밀 가격이 폭등했습니다. 중가 빵집을 열겠다는 꿈은 그대로 무너졌습니다.
이 사람의 잘못인가요? 우크라이나 전쟁을 예측했어야 했을까요? 전 세계 석학들이 현대에 지상전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들도 틀렸습니다. 한국에서 빵집을 준비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예측할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은 우리가 오랫동안 믿어온 능력주의라는 신화가 얼마나 위험한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5년을 준비했는데 전쟁이 터졌다
이 베이커리 사례에서 중요한 것은 실패의 이유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 실패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입니다.
목적주의적 시각은 냉정하게 말합니다. 5, 6년 동안 노력한 것은 허사가 맞다. 결국 베이커리를 오픈하지 못했으니 실패가 맞다. 그리고 더 나아가면 이렇게 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예측했어야지. 밀 공급처를 미리 다변화했어야지.
그런데 전 세계에서 예측만을 담당하는 수많은 석학들이 현대에 군인과 군인이 붙는 지상전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석학들이 틀렸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빵집을 준비하는 사람이 이것을 예측하고, 그것이 밀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까지 알았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잔인한 것입니다.
저는 이 베이커리 이야기가 단순한 불운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타인의 실패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실패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외부 변수로 인한 실패를 개인의 무능으로 돌리는 것이 우리 사회의 기본 반응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 반응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불필요한 자책으로 몰아넣고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열심히 준비한 콘텐츠가 예상치 못한 외부 이슈로 관심을 받지 못했을 때, 그것이 내 능력의 문제인지 아니면 타이밍의 문제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면 불필요하게 소진됩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나쁜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개입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능력주의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
지난 5년간 수많은 학자들이 가장 많이 거론한 단어가 있습니다. 능력주의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능력주의를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주의가 자본주의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잘못된 신화라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었습니다.
능력주의의 핵심 전제는 이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성공과 실패는 그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99% 이상이다. 그런데 이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개인의 노력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최대 30% 정도입니다. 그래서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더 큰 성공을 목표로 할수록 개인의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 줄어듭니다. 100억을 벌고 싶다면 개인의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5% 이하가 됩니다.
저는 이 수치가 허무주의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정확하게 보자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의 노력이 있어야 나머지 90%도 따라옵니다. 노력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노력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신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제 생각에는 능력주의가 위험한 이유가 실패했을 때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기 때문입니다. 능력주의 세계에서는 안 되면 네 잘못입니다. 이것이 수많은 현대인을 불행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실패의 90%를 차지하는 외부 변수는 보이지 않고 개인의 노력 10%만 보이게 만듭니다.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에 내 인생의 가치를 두는 것은 도박과 같습니다. 도박에서 돈을 땄다고 내가 잘한 것이 아니고, 잃었다고 내 잘못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운칠기삼 — 노력은 10%다
노력하면 반드시 된다는 말이 가장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어온 말일 수 있습니다. 왜냐면 안 됐을 때 누구 잘못이 되는지가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능력주의에서 안 된 것은 100% 개인의 잘못입니다.
그런데 일론 머스크가 20년 전에 지금 나이로 사업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지금의 기술과 인프라, 미국이라는 환경이 없었다면 그 성공이 가능했을까요. 지금의 일론 머스크는 지금이 시대에 태어난 것도 운입니다.
저도 이것을 블로그 운영에서 경험합니다. 콘텐츠가 잘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쓴 글이 반응이 없고, 비교적 빠르게 쓴 글이 반응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내 능력의 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습니다. 검색 알고리즘 변화, 이슈의 타이밍, 독자들의 관심사 변화 같은 외부 변수가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제 생각에는 이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삶의 질에 큰 차이를 만듭니다. 외부 변수를 알면 실패했을 때 불필요하게 자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공했을 때 지나치게 자만하지 않습니다. 그 균형이 지속 가능한 삶의 기반이 됩니다.
노력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10%의 노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10%가 전부라는 신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고성장 시대가 만든 착각
세대 갈등의 뿌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불과 10~20년 전까지 전 세계는 고성장이었습니다. 지금 그 성장이 멈췄습니다.
고성장 시대를 살았던 세대는 무엇을 경험했을까요. 노력하면 그만큼 돌아왔습니다. 일자리는 넘쳤고, 땅은 비어 있었고, 신기술은 쏟아졌습니다. 그 시대에 올라탔던 사람들은 착각을 하게 됐습니다. 노력한만큼 보상이 온다고. 그런데 그것은 개인의 노력이 아니었습니다. 성장하는 시대라는 외부 변수가 90%를 도와준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시대적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 세대가 성공한 것이 그들이 더 열심히 살아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외부 변수가 더 유리했던 시대를 살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금 세대가 힘든 것이 덜 노력해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외부 변수가 불리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을 이해하면 두 가지가 달라집니다. 하나는 자신을 향한 불필요한 자책이 줄어듭니다. 다른 하나는 성공한 사람을 향한 지나친 부러움도 줄어듭니다. 운의 구조를 알면 감정 소모가 줄어듭니다.
고성장 시대와 저성장 시대는 다릅니다. 같은 노력을 해도 결과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능력 차이가 아니라 시대의 차이입니다.
세대 갈등의 진짜 원인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때는 노력하면 됐는데 왜 너는 노력하지 않느냐. 자녀 세대는 이렇게 답합니다. 이력서를 250장 넣어도 안 뽑아줍니다.
부모 세대는 대학교를 졸업하면 기업들이 먼저 와서 모셔갔습니다. 학점이 2.2여도 취업이 됐습니다. 지금 세대는 학점 3.9여도 취업이 어렵습니다. 이것이 능력의 차이입니까. 아닙니다. 시대의 차이입니다.
| 일자리 공급 과잉 | 일자리 수요 과잉 |
| 기업이 졸업생을 찾아옴 | 졸업생이 기업을 찾아다님 |
| 노력의 10%가 90%의 보상으로 돌아옴 | 노력의 10%가 10%의 보상을 받기도 어려움 |
| 아파트 살 땅이 넘쳐남 | 아파트 가격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 |
세대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세대 간의 가치관 차이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외부 변수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모르면 서로를 탓하게 됩니다.
너무 일찍 성공한 사람이 위험한 이유
우리 선조들이 인생의 3대 불행 중 하나로 꼽은 것이 있습니다. 너무 어릴 때 성공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의 능력대로 세상을 주물러서 성공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다음 사업을 할 때 왜 안 되지? 이럴 리가 없는데를 반복하다가 망합니다. 한 번은 외부 변수가 맞아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자만이 생기고, 다음번에 외부 변수가 불리할 때 감당하지 못합니다.
저는 이것이 겸손이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했을 때 운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음 실패를 더 잘 견딥니다. 반면 성공이 순수하게 자신의 능력이었다고 믿는 사람은 실패 앞에서 무너집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이 왜 오래 가는 사람들이 항상 겸손한지를 설명합니다. 그 겸손이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외부 변수의 역할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 인식이 지속 가능한 성공의 기반이 됩니다.
성공했을 때 우연히 외부 변수가 맞아준 것에 감사하는 것, 그리고 실패했을 때 예측할 수 없었던 외부 변수를 인정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만드는 기반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10%의 노력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 10%가 있어야 나머지 90%도 따라옵니다. 그런데 그 10%를 하면서 반드시 될 것이라는 신화를 함께 믿는 것이 문제입니다.
계획은 세우되 계획대로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내려놓는 것. 열심히 하되 안 됐을 때 전부 내 잘못이라는 자책을 내려놓는 것. 성공을 보고 부러워하되 그것이 순수한 노력의 결과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능력주의 신화에서 벗어나는 방향입니다.
아파트를 못 샀다면 당신 잘못이 아닐 수 있습니다. 취업이 안 됐다면 당신이 무능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빵집을 못 열었다면 당신이 준비를 못 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외부 변수가 개입했을 뿐입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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