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들이 하는 게임 말고 나만의 게임을 하는 법
지금 여러분은 어떤 게임을 하고 있나요? 좋은 직장, 좋은 집, 안정적인 수입. 우리가 흔히 성공이라고 부르는 그 게임 말입니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드지 않으시나요?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주변 사람들이 다 하니까 따라가는 건지.
저도 비슷한 질문을 오랫동안 안고 살았습니다. 선택과 집중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수록, 내가 지금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이 진짜 나의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순간들이 생겼습니다. 최근 읽은 《삶이 묻고 고전이 답했다》는 그 질문에 정면으로 답해준 책이었습니다. 벌거벗은 세계사로 잘 알려진 김헌 교수님과 김월회 교수님이 동서양 고전의 지혜를 바탕으로 삶의 실질적인 질문들에 답한 책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메시지는 하나였습니다. 약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역사는 언더독의 반란으로 가득하다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로마는 카르타고마저 제압하며 지중해 전체를 아우르는 제국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 강력한 로마 내부를 문화적으로 관통하며 성장한 세력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의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시작된 기독교입니다.
예수는 로마에 대항하는 정부를 세우거나 영토를 확보하지 않았습니다. 지상이 아닌 하늘의 왕국을 이야기했고, 결국 제국의 질서를 어지럽힌 죄로 처형당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는 완전한 패배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죽음 이후 기독교는 민중의 폭발적 지지를 받았고, 결국 로마의 국교가 됩니다.
역사는 한 번 승리한 자가 영원히 왕좌를 유지하는 곳이 아닙니다. 한때 주목받지 못했던 세력이 어느새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는 전복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장입니다.
인생은 수많은 게임이 동시에 펼쳐지는 장이다
이 책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이것입니다. 지금 내가 플레이하는 게임이 정말 나의 것인가?
인생에는 수많은 게임이 동시에 펼쳐집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게임이 있고, 외면받는 게임도 있습니다. 전문직, 대기업, 핵심지 아파트, 외제차. 우리는 이것을 승리자의 조건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게임에서 약자가 되기를 선택하고, 애초에 다른 것을 추구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게임에서 약자가 될 과감한 용기를 발휘한 사람이, 다른 게임에서는 결국 강자가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이 동서양 고전을 통해 반복적으로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예수와 오디세우스가 선택한 게임
예수는 지상의 권력이라는 게임 대신 종교라는 전혀 다른 게임을 선택했습니다. 지상에서는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지만, 종교의 영역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승자가 됐습니다.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로이 전쟁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던 오디세우스에게 여신 칼립소가 제안을 합니다. 영원한 젊음과 불멸의 삶을 주겠다고. 당시 사람들이 선망하는 게임에서 손쉽게 승리자가 되는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신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살다가 죽는 필멸자의 삶을 살고 싶다고. 불멸과 안락과 쾌락을 버리고 고통과 노화가 따르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그 선택을 통해서만 그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현명한 약자로 사는 세 가지 방법
1. 타인에게 배워라 — 크루소가 놓친 것
《로빈슨 크루소》에서 크루소는 자신의 문명이 프라이데이의 야만성보다 우월하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가 이 이야기를 뒤집은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서는 다른 시각을 제시합니다.
이 소설에서 크루소는 목적을 갖고 시간을 관리하지 않으면 삶을 낭비한다는 근대인의 강박 속에 삽니다. 반면 방드르디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며 종종 크루소를 보고 폭소를 터뜨립니다. 그러다 실수로 화약고에 불이 붙어 크루소가 쌓아 놓은 문명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크루소는 비로소 방드르디의 행복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우월한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문명의 편리함과 내면의 행복은 서로 다른 게임입니다. 한 게임의 강자가 다른 게임의 강자는 아닐 수 있습니다. 크루소는 방드르디가 바로 옆에 있었는데도 그 다른 게임의 가능성을 줄곧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옆의 누군가는 나와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깊이 대화해본다면,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또 다른 게임의 가능성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2. 스스로 한계를 긋지 마라
공자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불가능하다며 물러나는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맹자는 이를 자포자기(自暴自棄), 즉 스스로를 해치고 버린다고 표현했습니다.
스스로 한계를 긋는 데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게임에서 자신을 패배자로 만들어 의지를 완전히 상실하는 것. 다른 하나는 자신을 하나의 게임에 가둬두고 울타리를 치는 것입니다. 그 게임이 자신에게 불행을 주고 있는데도 다른 판으로 나아갈 의지 없이 그 안에만 머무는 것이죠.
스스로 긋는 한계를 떨쳐버려야 더 많은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의 가능성은 훨씬 넓습니다.
3. 반항하라 — 프로메테우스의 전략
자신에게 맞는 게임을 찾아 나서려면 주변에서 옳다고 말하는 게임을 거부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건 마찰 없이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존재입니다. 하지만 신들의 불을 훔친 죄로 바위에 묶인 채 새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는 제우스가 결국 파멸적인 결혼으로 몰락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우스는 그 예언의 내용을 캐물었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온갖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입을 굳게 다물었습니다. 결국 불안감을 이기지 못한 제우스가 그를 풀어주고 원칙과 정의로 통치하겠다는 약속까지 하게 됩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시도하는 일반적인 길 대신, 자신만의 전략으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저명한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지켜낸 것이죠.
무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상나라의 제후였던 그는 폭정을 일삼는 왕에게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아버지조차 신하가 왕에게 반기를 들 수는 없다며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무왕은 충성스러운 신하라는 게임을 거부하고, 정의를 추구하는 새로운 게임에 참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의 의미
저는 요즘 선택과 집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나를 선택한다는 건 다른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인간관계도, 자아실현도, 금전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게임에서 지는 것이 두려워 여러 게임을 동시에 챙기려 하다 보면, 어떤 게임에서도 끝까지 가보지 못하게 됩니다. 성장을 위해서는 하나의 쓰라린 경험이 또 다른 성취의 전제 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지금 내가 두려워서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게임이 있다면 물어보세요. 내 깊은 내면이 그 게임을 원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남들의 게임에서 약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게임을 하고 계신가요? 그게 진짜 나의 선택인가요, 아니면 주변을 따라간 것인가요? 댓글로 여러분의 이야기를 나눠주시면 깊이 있는 대화가 이어질 것 같습니다. 😊
이미지 출처: Pixabay (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