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이면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 당신만 그런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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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심리·자기계발

보통이면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 당신만 그런 게 아닙니다

by journal4712 2026.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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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왜 보통을 혐오하는가 — 상위 10% 기준의 함정

보통으로 사는 것이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 있으신가요? 딱히 나쁜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내 삶이 부족한 것 같고, 남들보다 뒤처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말입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 감각에 시달렸습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내 글이 충분히 좋지 않다는 생각, 내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기대의 기준이 어디서 왔는지를 물어보게 됐습니다. 내가 설정한 기준인지, 아니면 사회가 주입한 기준인지를요.

오늘은 한국 사회에 깊이 박힌 보통 혐오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 자신을 갉아먹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인서울 4년제는 전체의 10%다

학벌 이야기를 해봅니다. 보통 학벌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인서울 4년제, 많이 나오는 말입니다. 그런데 실제 데이터는 다릅니다.

전체 학생 중 인서울 4년제에 진학하는 학생의 비율은 10%입니다. 지방 4년제에 진학하는 학생이 40%이고, 전문대로 들어가는 학생이 20%입니다. 즉 인서울 4년제가 아닌 90%의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인서울 4년제에 가지 못한 것이 마치 실패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지방 4년제에 다니는 40%가 스스로를 보통이라고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전문대에 다니면서 자신을 쓰레기라고 생각하게 되는 상황이 생깁니다.

저는 이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명확하게 보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지방 4년제가 보통의 모습인데, 그 40%가 자신을 보통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가 있다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인식의 왜곡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입니다. 기준 자체가 상위 10%에 맞춰져 있으니 나머지 90%는 항상 부족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기준을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하면 자기 자신을 공정하게 볼 수 없게 됩니다.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월급쟁이 중 대기업 정규직은 10%입니다. 월급 생활자의 80%가 중소기업에 다닙니다. 그런데 대기업이 아니면 중소기업이라는 말 자체가 비하의 뉘앙스를 갖습니다.


한국은 상위 10%를 기준으로 삼는 사회다

인간이 언제 안정감을 갖느냐고 물으면, 답은 간단합니다.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보일 때입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는 것은 내가 잘났다는 인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다들 나처럼 사네라는 안정감을 줘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보통의 자리가 안정감을 주지 못합니다. 기준이 상위 10%에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상위 30%도 아니고 상위 10%입니다. 그 10%에 들지 못하면 뭔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압박감이 생깁니다.

저는 이것이 단순한 경쟁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를 결정합니다. 상위 10%가 기준이 되면 90%는 항상 부족한 존재가 됩니다. 그 90%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낮춰 부르면서 스스로도 낮아지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제 생각에는 미국과의 비교가 흥미롭습니다. 미국에서도 명문대가 있고 명문대 아닌 대학이 있습니다. 하지만 명문대에 가지 못한 사람에 대해 못났다는 인식이 한국보다 훨씬 덜합니다. 같은 현상인데 사회가 그것을 어떻게 의미화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보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명품백을 가지지 않으면 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불안해지는 것도 같은 구조입니다. 모두가 가질 수 없는 것이 기준이 되면 모두가 부족한 사람이 됩니다.


보통 혐오는 우리 안에 있다

중요한 전환점이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보통을 혐오한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보통인데 한국 사회가 보통을 무시해. 나는 피해자야.

그런데 보통 혐오는 사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의 어려움을 이야기할 때 공부 열심히 했어야지라는 댓글이 달립니다. 그 댓글을 다는 것도 대부분 보통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통이면서도 보통을 혐오합니다.

저도 이 자기 모순을 경험했습니다. 스스로는 평범한데 평범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상태. 블로그 조회수가 기대에 못 미칠 때 그것을 보통의 결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실패로 해석했습니다. 기준이 상위 10%에 맞춰져 있으면 보통의 결과가 항상 실패처럼 보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 자기 모순이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보통인 자신을 혐오하면서 보통이 아닌 척을 해야 하고, 보통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계속 싸워야 합니다. 그 싸움은 외부 세계와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끝이 없습니다.

이 자기 모순 때문에 힘들어집니다. 보통을 혐오하면서 보통의 삶을 살면 그 불일치가 고통이 됩니다.


보통 혐오가 동기 부여로 작동하는 방식

보통 혐오가 왜 생기는지를 이해하면 중요한 것이 보입니다. 보통을 혐오해야 보통이 되지 않으려는 동기 부여가 생깁니다. 보통을 나쁘게 봐야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어집니다. 이것이 보통 혐오의 심리적 기능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작동합니다. 보통이 싫다는 생각이 더 열심히 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됩니다. 결국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은 다 어딘가에서 보통입니다.

공부를 잘해도 가족 관계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돈이 있어도 자식이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안으로 들어가 보면 무지막지하게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모두가 보통 사람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콘텐츠를 만들면서 독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겉으로는 잘 되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도 사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보면 저와 비슷한 고민, 비슷한 두려움, 비슷한 실패를 갖고 있었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제 생각에는 보통 혐오의 가장 큰 문제가 자기 자신의 보통의 면을 수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잘 안 되는 부분이 드러날 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상황 자체를 회피하게 됩니다. 상황을 회피하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수용해야 다음이 생깁니다.

심지어 모든 것이 다 내 뜻대로 풀리는 사람이 있다면 티끌 같은 것도 태풍처럼 느끼게 됩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면 공허가 찾아옵니다.


깨진 항아리를 우물에 던져야 한다

깨진 항아리에 물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바닥이 깨졌으니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고치지? 어떻게 고치지?를 반복하면 물을 채울 수 없습니다.

그런 항아리는 우물에 던져야 합니다. 우물에 던져야만 물이 차기 때문입니다. 그 우물이 내 마음입니다. 깨진 항아리를 수용해야만 물을 채울 수 있습니다. 깨진 항아리가 바로 나입니다.

저는 이 비유가 자기 수용에 대한 가장 정확한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의 부족한 면을 고치려고만 하면 그 에너지가 자책과 회피로 갑니다. 그런데 부족한 면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거기서부터 실제 변화가 시작됩니다.

제 생각에는 깨진 항아리를 수용한다는 것이 체념이 아닙니다. 현실을 왜곡 없이 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 상태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하게 보면 거기서부터 실질적인 방향이 보입니다. 내 상태를 인정하지 못하면 방향 자체를 잡을 수 없습니다.

내가 못 난 면을 수용하는 순간 그 사람은 완전해질 수 있습니다. 나도 내가 수용해버리면 완전무결한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수용의 역설입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보통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두 가지 반응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는 사실 빛나는 존재였어라는 위로를 찾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특별해, 우리 모두가 소중해라는 힐링 메시지는 오래 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도 결국 특별함이라는 기준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해야 가치 있다는 전제 위에서 당신도 특별하다고 말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아닙니다.

인식 방식전제지속성
나는 사실 빛나는 존재다 빛나야 가치 있다 짧음
우리 모두가 특별하다 특별해야 가치 있다 짧음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보통도 그냥 보통이다 지속 가능

보통을 높게 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을 낮게 보지도 말자는 것입니다. 보통을 그냥 보통으로 보자는 것입니다. 허연 것이 있으면 허연 것을 허연 줄 아는 것입니다.

내가 뭐하러 특별해야 하는가. 내가 뭐하러 빛나야 하는가. 특별하지도 빛나지도 않아도 보통의 존재로서 괜찮게 살 수 있다.


여러분은 보통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신 적이 있으신가요? 어떻게 자기 수용을 해나가고 계신지 댓글로 나눠주세요. 😊


이미지 출처: Pixabay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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