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고 있는데 어느 날 탁 넘어지면 이런 생각이 옵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나는 왜 이럴까. 자책이 시작되고 자신이 너무 미워집니다.
저도 스스로에게 가혹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잘 못하면 당연히 자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책이 나를 더 나아지게 해줬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싫어하게 만들었고, 그 상태에서는 어떤 것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관점에서 자기 사랑을 시작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인간 최대의 불행은 자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큰 사업이 망하거나, 건강을 잃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 이런 것들이 인간 최대의 불행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극한의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보듬고 수용하면 언젠가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절망에서도 걸어나올 수 있습니다.
반면 온갖 것을 다 가지고 있어도 자기가 싫으면, 그 상태가 가장 큰 불행입니다. 인간 최대의 불행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나아가서 자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문장을 처음 봤을 때 과장처럼 느껴졌습니다. 자식을 잃는 것, 건강을 잃는 것보다 자기를 싫어하는 것이 더 큰 불행이라는 말이 선뜻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외부의 불행은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될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을 싫어하는 상태는 스스로가 적이 되는 것입니다. 어디서 무엇을 해도 그 감각이 따라다닙니다.
제 생각에는 자기를 싫어하는 상태가 위험한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그 상태에서는 좋은 일이 생겨도 진짜로 기쁘기가 어렵습니다. 좋은 결과가 나도 어차피 운이었겠지, 다음에는 또 실망할 거야라는 생각이 먼저 옵니다. 자기 사랑의 부재는 외부의 좋은 것들을 흡수하지 못하게 막는 필터가 됩니다.
자기 사랑의 4가지 요소
자기 사랑은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요소내용
자기 수용
장점 단점 결점 모두 합한 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자기 존중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다
자기 자비
힘들 때 따뜻하게, 친절하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이해하기
자기 돌봄
나에게 잘해주고 나를 귀하게 여기고 보살피기
이 네 가지 중 가장 첫 번째가 자기 수용입니다. 좋은 점, 나쁜 점, 장점, 단점, 강점, 약점, 결점까지 다 합한 나를 그래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이게 나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이 있는 사람이 자기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완벽해야 아름답다는 생각은 잘못된 학습입니다. 뒷마당의 큰 나무를 좋아하는 이유가 꽃망울이나 색깔이 아니라 그늘 때문인 것처럼, 그 그림자가 있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처럼. 우리의 허점과 부족함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림자를 없애면 더 아름다워진다는 말은 틀렸습니다.
단점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소심하다는 것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단점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사람은 가전제품이 아닙니다. 냉장고에는 얼음이 안 된다, 소리가 시끄럽다 같은 절대적 단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모양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단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기준 자체를 누가 정했는지 물어봐야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Person-Environment Fit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사람과 환경의 적합성입니다. 절대적 단점인가, 아니면 그 환경에서만 단점으로 느껴지는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한국에서 느려터졌다는 것은 단점입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여유롭다, 느긋하다,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소심하다는 것의 반대편을 보면 신중하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많은 것을 고려해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성급하게 행동해서 실수하거나 다른 사람 기분을 나쁘게 하는 일이 그만큼 적습니다. 억지가 아닙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단점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반드시 다른 면이 있습니다.
저는 이 개념이 처음에는 말 장난처럼 느껴졌습니다. 소심한 것이 신중함이라고? 억지 아닌가? 그런데 실제로 주변을 보니 소심해서 신중하게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사람이 오히려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덜 하더라고요. 성격의 특성이 문제가 되는지 강점이 되는지는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제 생각에는 단점이라고 부르는 것 대부분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특정한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의미에 불과합니다. 블로그 글쓰기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너무 꼼꼼하게 팩트를 확인하는 성격이 글 한 편 쓰는 데 오래 걸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독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글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단점이라고 잘라버리면 강점도 함께 사라집니다.
자기 용서 3단계
자기 수용이 잘 안 될 때, 자책이 너무 강할 때는 먼저 자기 용서를 연습해야 합니다. 자기 용서는 3단계로 할 수 있습니다.
1단계. 인류 보편성을 기억한다. 사람은 누구나 실패하고, 누구나 실수하고, 누구나 잘못을 합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완벽한 엄마도, 완벽한 아빠도, 완벽한 직원도, 완벽한 학생도 없습니다. 이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2단계. 과거가 아닌 현재에 집중한다. 자책하는 일은 대부분 과거에 일어난 것입니다. 강도 높게, 오랫동안 자책해도 그 일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로 시선을 옮겨야 합니다.
3단계. 두 가지 질문을 한다. 여기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이 두 가지 질문을 하면 실수가 오히려 가장 잘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실수는 성장 구역에 있다는 증거다
실수를 안 하는 사람은 실수할 것 같은 일을 안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100%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실수가 줄어듭니다. 하지만 그것은 편안한 구역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내 한계를 벗어나면 실수가 나옵니다. 그 실수가 바로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허둥지둥 실수하면서 배우고 있다면 지금 성장 구역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기려고 온 것이 아니라 성장하려고 온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탁 넘어졌을 때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라고 자책하는 대신, 그럴 수도 있지, 다들 넘어지는데 잠깐 쉬다가 다시 일어나 보자. 이것이 자기 자비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해도 가치 있다
아파서 1년 동안 직장을 못 간 경험이 있었습니다. 걷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고, 엄마가 밥을 차려주고 목욕까지 시켜주던 시기였습니다. 행위적 차원에서 기여를 하고 있었냐 하면 전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부담만 됐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엄마에게 세상을 다 줘도 바꿀 수 없는 딸이었습니다. 남편에게도 그 관계의 끈, 사랑과 지지라는 존재 차원의 기여를 하고 있었습니다. 행위로서의 기여만 기여가 아닙니다.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우리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가치는 성취와 생산성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존재만으로 존중받아야 할 절대적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 개념이 특히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쓸모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랍니다. 성적, 스펙, 직업, 연봉. 무언가를 해내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메시지가 너무 깊이 박혀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존재 차원의 기여라는 개념은 단순히 철학적 위로가 아닙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자체가 주변 사람의 행동과 선택에 영향을 미칩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있기 때문에 옆 사람이 더 조심하거나 더 용기를 내는 일이 생깁니다. 존재는 그 자체로 영향력입니다.
나에게 예스 하는 법
거절을 못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더 존중하기 때문에, 혹은 상대가 나를 좋아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노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훨씬 쉬워집니다. 저 사람에게 노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노 뒤에 나에게 예스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약속 제안에 못 간다고 말하는 것은 저 친구에게 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쉬어야 하는 나에게 예스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이유가 내가 완벽하고 잘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잘하는 면, 못하는 면, 결점, 단점, 그 복합한 것들을 다 합한 나를 수용하고 보듬어 주고 귀하게 여기는 것, 그것이 자기 사랑입니다. 누군가가 조건 없이 자기를 사랑해 줄 때, 남의 시선에 전전긍긍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줄어듭니다. 그 사랑을 내가 나에게 해주면 됩니다.
자기 자신에게 가혹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혹은 자기 자비를 연습해보고 나서 달라진 것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나눠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