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유정은 욕망을 인간을 전진시키는 핵심 동력으로 정의합니다. 간호사에서 작가로, 11번의 낙방을 견뎌낸 그의 생애사는 욕망이 단순한 탐욕이 아닌 삶의 가치임을 증명합니다. 냉소의 시대, 우리는 무엇으로 움직여야 하는가를 묻습니다.
욕구와 욕망: 사전 너머의 의미를 찾아서
정유정은 강연에서 가장 먼저 욕망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본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사전은 욕망을 "부족함을 느껴서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마음 혹은 의지"로 정의합니다. 여기서 '탐하는'이라는 수식어가 이미 부정적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그는 날카롭게 짚어냅니다. 사전조차 사회의 통념을 반영한다는 지적입니다.
이어서 그는 욕망과 욕구의 차이를 구분합니다. 욕구는 "무엇을 얻거나 무슨 일을 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가치 중립적인 해석이 가능한 반면, 욕망은 욕구에서 파생되어 더 큰 의미로 발전한 감정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욕구는 식욕, 수면욕, 배설욕, 성욕처럼 생존과 번식의 추구에 해당하며, 채워지면 갈구가 멈추는 특성을 지닙니다. 배가 부르면 숟가락을 놓고, 잠에서 깨면 활동하기 위해 일어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욕망은 다릅니다. 정유정의 정의에 따르면 욕망은 욕구에서 출발하되 자기 삶의 가치로 진화할 때 얻어지는 감정 상태입니다. 이때 삶의 가치란 도덕적 의미를 품지 않으며, 부정적 가치일 수도 긍정적 가치일 수도 있습니다. 이 정의는 개인주의 문화권과 관계주의 문화권 사이에서 욕망이 집착과 탐욕으로 읽히기도 하고, 열정과 자유 의지로 연결되기도 한다는 문화적 맥락까지 아우릅니다.
이 개념 구분은 단순한 어의 분석을 넘어 실질적 통찰을 제공합니다. 우리가 욕망을 부끄러워하거나 억누르는 이유 중 상당 부분이 사전과 사회 통념이 만들어낸 부정적 프레이밍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욕구가 탐욕이나 중독으로 진전될 위험을 인식하면서도, 욕망 자체를 삶의 동력으로 긍정하는 이 구분은 정유정 문학 세계의 철학적 토대이기도 합니다. 개인이 자신의 욕망을 직시하고 그것을 삶의 언어로 번역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기 서사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이 구분은 독자에게도 유효한 성찰의 출발점이 됩니다.
성취적 욕망: 11번의 낙방이 증명한 인간의 힘
정유정이 제시하는 욕망의 스펙트럼에서 가장 극적인 축은 파괴적 욕망과 성취적 욕망입니다. 파괴적 욕망은 집착 혹은 탐욕을 바탕으로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 파괴하는 방향으로 흐릅니다. 이는 그의 소위 '악의 삼부작'이라 불리는 『7년의 밤』, 『종의 기원』, 그리고 욕망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 『완전한 행복』에서 치열하게 탐구됩니다. 반면 성취적 욕망은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내 심장을 쏴라』, 『진니진위』, 그리고 신작 『영원한 천국』에서 다루는 욕망으로,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고자 하는" 방향성을 지닙니다.
정유정은 이 성취적 욕망의 실증적 사례로 자신의 삶을 직접 제시합니다.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로 일하면서 어머니의 3년간 암투병을 곁에서 지켜봤고, 어머니 사망 후에는 세 동생의 대학을 책임지는 장녀로서 20대 전체를 견뎌내야 했습니다. 친구들이 자기 길로 나아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꿈을 애써 외면해야 했던 그 시간은, 단지 억압의 시간이 아니라 욕망이 내면에서 단단하게 응결되던 시간이었습니다.
30대에 결혼을 하고 직장을 그만두면서 비로소 작가의 꿈을 향해 출발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등단을 위한 문학상 공모전에서 무려 11번을 떨어진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 상을 받아왔고, 대학 교수에게 "이야기를 잘하는 아이는 처음 봤다", "너는 꼭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사람이 맞닥뜨린 연속적 실패였습니다.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았고, 그는 스스로를 "우울한 개구리"라 부를 만큼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이 6년의 시간을 정유정은 "실패와 좌절이 거듭된, 주저앉으려는 자신과 싸운 인정 투쟁의 시간"이자 "가장 열렬하게 살았던 욕망의 시간"으로 회고합니다. 이 고백은 성취적 욕망이 낭만적 개념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실패의 축적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 즉 자유 의지의 구체적 발현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며, 그로 인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정유정이 말하는 자유 의지의 정의가 이 삶 속에서 실체화됩니다.
야성: DNA에 새겨진 생존자의 무기
정유정은 성취적 욕망의 뿌리를 진화론적 차원으로까지 확장합니다. 우주의 역사를 1년으로 환산했을 때 사피엔스가 지구에 출현한 것은 12월 31일 자정 8분 전에 불과합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사피엔스는 기아와 천적으로부터 보호받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가해한 자연의 폭력성에서 구원받기 위해 사회를 이루고 종교를 탄생시켰습니다. 질병을 극복하고 편의와 안전을 추구하는 욕망은 과학과 의학을 발전시켰고,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추구하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욕망은 문화, 예술, 철학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뇌 구조는 8분이라는 진화론적 시간으로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즉, 우리의 DNA에는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려는 생존자의 욕망이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정유정은 이것에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1차원적 욕구를 넘어 다차원적 욕망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이 특별한 기질이 사피엔스를 지구상 최상의 포식자로 만들었고, 오늘날 우리를 여기까지 이어지게 한 힘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러나 정유정은 동시에 냉소적 현실을 직시합니다. 점점 야성을 잃어가는 시대, 노력이라는 말을 비웃는 세상에 산다는 것이 슬픈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 지점에서 사용자의 비평이 정확하게 기능합니다. 노력과 야성의 강조가 구조적 제약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는 지적은 타당한 긴장입니다. 사회적 불평등과 기회의 불균형은 개인의 야성만으로 돌파할 수 없는 현실적 장벽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정유정의 메시지는 구조를 외면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가 사회적 존재인 동시에 개별적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개별적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기적이 되라는 말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기 삶의 실행자로서 스스로를 책임지라는 제안입니다. 내가 내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려 하면 보일 것이고, 유전자에 숨 쉬고 있는 태초의 야성도 찾아낼 수 있다는 것. 그 야성이야말로 냉소의 시대를 버티게 하는 가장 소중한 무기라는 것이 이 강연의 핵심입니다.
정유정은 욕망을 금기어에서 삶의 무기로 전환시킵니다. 욕구와 욕망의 구분, 성취적 욕망의 실증, 야성의 진화론적 근거라는 세 층위의 논리는 일관된 서사를 이룹니다. 구조적 제약을 간과할 위험이 없지 않으나,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 삶의 실행자로 서라는 제안은 냉소와 포기가 만연한 시대에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전합니다.
[출처]
정유정 작가 강연 (소설가 정유정 / 욕망, 야성, 자유의지): https://youtu.be/i7MZVhsCJcU?si=jDGttk2xLTfDf-8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