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면 읽어야 할 이야기
본문 바로가기
삶·심리·자기계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면 읽어야 할 이야기

by journal4712 2026. 4. 23.
반응형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사는 삶이 가능할까 — 항로 변경의 기술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고 싶다. 누구나 한 번쯤 품어본 생각입니다. 그런데 막상 시도해보면 금방 현실의 벽에 부딪힙니다. 만화책만 읽겠다고 마음먹었다가 일주일 만에 현타가 오는 것처럼요.

저도 이 질문을 오래 품고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는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뮤지션 장기하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삶은 자유롭게 아무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굉장히 정교한 선택과 포기의 연속이라는 것을요.

오늘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삶이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세 가지 핵심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고 싶다는 말의 진짜 의미

하고 싶은 것만 하겠다는 신조는 10대 때 입시 공부를 9년 동안 열심히 하고 나서 생겨났습니다. 하기 싫은 일을 누군가 시키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반작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실제로 살아보면 훨씬 복잡해집니다.

하고 싶은 것이 평생 하나일 것이라는 착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고 싶은 것과 내일 하고 싶은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만화책을 실컷 읽고 싶었던 것이 일주일이면 충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해봤기 때문에 미련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안 해본 것에 대한 로망, 아쉬움, 궁금증이 사라지려면 일단 해봐야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도 그대로 경험됩니다. 처음에는 모든 주제를 다 다루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써보고 나면 이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아니구나가 보입니다. 해보지 않았을 때는 막연한 로망이 있었는데, 해보고 나면 정리가 됩니다. 하고 싶은 것의 목록은 해보면서 줄어드는 것이지, 머릿속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생각에는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가장 빠른 방법이 일단 해보는 것입니다. 해보지 않으면 내 안에서 정리가 안 됩니다. 해보고 현타가 왔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한 가지를 확인한 것입니다. 할 만큼 해본 것입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삶은 아무거나 해도 되는 삶이 아닙니다. 해보면서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솔직하게 정리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뇌 안의 국회 — 하고 싶은 것은 하나가 아니다

내 안의 진심은 하나가 아닙니다. 여러 개의 욕구와 생각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이것을 뇌 안의 국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여러 정당이 있고 그날그날 출근한 의원들이 다릅니다. 그 순간 출근한 의원들이 결론을 내립니다.

그래서 매일 다른 결정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루 단위로 생각할 수 없고 최근 두세 달의 추세를 종합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정당이 맨정신으로 동시에 출근하는 날이 있습니다. 그날 내려진 결정이 이후의 삶을 크게 바꿉니다. 나는 프로 뮤지션이 되겠다는 결심이 바로 그런 날에 나온 것입니다.

저는 이 국회 비유가 내 안의 갈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블로그를 쓸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오늘은 이 주제가 당겨지고 내일은 저 주제가 당겨집니다.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진짜 관심 있는 방향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제 생각에는 국회가 잘 작동하는 순간을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드라이브를 하거나, 달리기를 하거나, 자연 속을 걷거나. 풍경이 바뀌는 환경에서, 혹은 몸을 움직일 때 뇌가 다르게 작동하고 각 정당이 고루 깨어나는 경험이 있습니다. 중요한 결정이 필요할 때 책상 앞에 앉아 억지로 생각하는 것보다 먼저 몸을 움직이는 것이 더 효과적인 이유입니다.

AMCC라는 뇌 영역이 될 것 같다, 안 될 것 같다를 판단합니다. 유산소 운동처럼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이 반복되면 이 영역이 강화되어 아이디어를 밀어붙이는 힘이 생깁니다.


마니페스토 — 선포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어느 날 드럼 연주를 보고 나는 프로 뮤지션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빡 들어온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행동 강령이 생겼습니다. 하루에 8시간씩 드럼 연습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마니페스토입니다. 자신에게 하는 강력한 선언입니다.

마니페스토가 중요한 이유는 선언이 아이덴티티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제 프로 뮤지션이야라는 선포가 이후의 모든 뇌 시스템을 그 방향으로 조직합니다. 그런데 선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선포를 행동으로 보여줄 때 주변 사람들이 인증해주기 시작하고 그 인증이 다시 나를 강화합니다.

저는 이 마니페스토의 힘을 블로그를 시작할 때 경험했습니다. 나는 삶과 심리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이야라고 선언한 이후에 글의 방향이 잡혔습니다. 선언 전에는 이것도 써볼까, 저것도 써볼까 흔들렸는데, 선언 후에는 이 주제에 맞는 것인가 아닌가로 판단하게 됐습니다. 방향이 생기니까 선택이 쉬워졌습니다.

제 생각에는 마니페스토의 핵심이 세상에 내지르는 것입니다. 혼자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것과, 말로 꺼내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은 다릅니다. 세상에 내지르는 순간 다시 주워 담기 어려워집니다. 그 불가역성이 오히려 실행의 동력이 됩니다.

말로만 선언하고 행동이 없으면 주변이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 표정을 보게 됩니다. 반대로 선언하고 행동이 따라가면 주변이 인증해줍니다. 그 피드백 시스템이 나를 그 사람으로 만들어갑니다.


항해와 항로는 다르다 — 방향이 틀렸을 때 해야 할 것

드럼 연습을 하루 8시간씩 하던 중 왼손이 말을 듣지 않게 됐습니다. 국소성 긴장증이었습니다. 프로 드러머의 꿈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연결돼 있던 군악대 계획도, 프로 뮤지션의 꿈도 함께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프로 뮤지션이라는 항해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정한 항로가 문제였습니다. 프로 드러머 경로로 군악대를 거쳐 가는 이 항로는 내 배가 감당할 수 없는 항로였습니다. 항로를 바꿔야 했습니다.

저는 이 항해와 항로의 구분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특정 방법이 막혔을 때 꿈 자체를 포기합니다. 그런데 사실 막힌 것은 방법이지 방향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도 처음에 생각했던 방식이 안 될 때 블로그 자체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방식을 바꾸니까 다시 길이 열렸습니다.

제 생각에는 항로 변경이 포기가 아니라 지혜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장기 계획을 세워놓고 그것에 집착하면 항로 변경이 실패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언제든 항로는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두면 변경이 자연스러운 과정이 됩니다. 이것이 고집이 아니라 현명함입니다.

음악이 하고 싶다는 항해는 유지하면서 항로를 바꿨습니다. 돈을 버는 수단은 영어 통역병으로 따로 마련하고, 음악은 누가 듣든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방향으로.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가장 위험하다

가장 나쁜 상태가 있습니다. 확실하게 포기한 것도 아니고, 제대로 가는 것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상태입니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느 쪽도 실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사위를 던져 놓고 결과를 안 보는 것과 같습니다. 잘됐으면 어떡하지, 망했으면 어떡하지 하면서 아예 보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것에 대해 남탓을 시작하면 거기서부터는 스스로의 발전이 없습니다.

저도 이 이도저도 아닌 상태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블로그를 계속해야 할지, 다른 방향을 찾아야 할지 고민하면서 글도 제대로 못 쓰고 방향도 못 잡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잘 안 되더라도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이도저도 아닌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을 그때 배웠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완벽한 답을 기다리는 것을 멈추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풀리는 고민은 일단 움직이면서 답이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바심을 내면서 괴로워하기보다는 통제 가능한 것에 집중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더 실질적인 방법입니다.

상태특징결과
포기 방향을 바꿔 다른 길로 새로운 항로
실행 하나를 선택하고 밀어붙임 성장과 배움
이도저도 아님 결과 두려워 아무것도 안 함 시간만 소모, 남탓으로 이어짐

에고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고 싶은 일이 된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산다고 하면 에고가 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반대입니다. 에고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내려놓는 것이 좋습니다.

영화 음악 감독을 맡았을 때 자신의 자아를 전혀 투영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고 싶냐 안 하고 싶냐의 문제가 아니라 감독을 만족시키는 것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러자 집에 와서 오케이 받았으니 맥주 한 잔 마시는 만족감이 생겼습니다. 에고를 내려놨기 때문에 오히려 일이 잘됐고, 그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됐습니다.

저는 이 에고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블로그 운영에서도 결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글과, 독자가 읽고 싶은 것을 쓰는 글은 다릅니다. 처음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것이 좋은 블로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에고를 내려놓고 독자의 관점에서 쓰기 시작했을 때 오히려 더 좋은 글이 나왔습니다.

제 생각에는 좋은 프리즘이라는 비유가 정확합니다. 프리즘은 자신의 색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들어오는 빛을 있는 그대로 통과시켜 무지개를 만듭니다. 내 안의 에고가 너무 강하면 빛이 내 색깔로만 나옵니다. 에고를 맑게 비워야 다양한 빛이 통과할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의식이 강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나라는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 에너지가 다 씁니다. 그 에너지가 실제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에너지를 빼앗습니다.


내 길은 가다 보면 만들어진다

원래부터 내 길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가다 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됩니다. 가보니 아닌 것 같아서 항로를 바꾸고, 또 가다가 또 바꾸는 과정 자체가 나의 항로가 됩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라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사후적으로 공통점을 추출한 것입니다. 뒤돌아보니 그렇더라는 후견지명입니다. 살아가는 순간에는 아다리가 맞아서 이렇게 사는 것이지, 처음부터 공식을 알고 간 것이 아닙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인가 없는 일인가를 먼저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힘들더라도 합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은 이건 나에게 안 맞는 것이라고 정리합니다. 그 기준 하나가 선택을 훨씬 명확하게 만듭니다.

눈앞에 있는 통제 가능한 것들을 가지고 노는 것. 거기서 즐거움을 찾는 것. 조바심을 내면서 괴로워하기보다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 이것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삶의 실제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항해 중인가요, 아니면 항로를 바꾸는 중인가요?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있었던 항로 변경 경험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나눠주세요. 😊


이미지 출처: Pixabay (pixabay.com)

반응형

개인정보처리방침 | About | Cont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