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속 인물은 단지 이야기를 이끌기 위한 구성 요소가 아닙니다. 실제로는 서사의 구조, 주제, 감정선 전체를 설계하는 중심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 작가의 관점에서 보면, 캐릭터는 단순한 외형이나 말투가 아니라 갈등, 변화, 목적이라는 장치 위에 세밀하게 쌓아 올려야 할 구조물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시나리오 작가의 시선으로 2025년 영화에 등장한 주요 캐릭터들을 분석하며, 인물 설계의 원리와 서사 구조 속 역할을 심도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변화'의 축으로 작동하는 주인공 구조
시나리오 작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입니다. 인물은 단순히 사건에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건을 통해 성장하거나 타락하는 과정을 겪으며 관객과 감정적으로 연결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등장인물의 내면적 변곡점입니다. 2025년 개봉작 <루미너스 데이즈>의 주인공 ‘사라’는 완벽한 캐릭터 아크를 보여준 인물입니다. 처음에는 성공에 집착하는 냉소적인 인물이었지만, 사건이 전개되면서 자신이 외면했던 가족과의 상처, 그리고 진정한 가치에 대해 자각하게 됩니다. 그녀는 외부 갈등(회사 내 위기)과 내면 갈등(상실과 트라우마)을 통해 서서히 변화하며, 관객에게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합니다. 시나리오 작가는 이러한 변화를 단지 감정의 흐름으로만 설계하지 않습니다. 변화의 계기, 결정적 선택의 순간, 재구성된 자아의 3단 구조를 통해 인물을 서사의 뼈대에 연결시킵니다. 관객은 이 변화를 목격하며 주인공의 성장과 함께 울고 웃게 되는 것이죠.
'목표'와 '욕망'의 이중 구조
많은 작가들이 혼동하는 요소 중 하나는 캐릭터의 '목표(goal)'와 '욕망(desire)'입니다. 표면적인 목표는 플롯을 이끌고, 숨겨진 욕망은 캐릭터의 내면을 이끕니다. 이 두 가지가 충돌하거나 맞물릴 때, 드라마는 깊이를 얻게 됩니다. 영화 <네버폴>의 주인공 ‘마르코’는 보이는 목표와 숨겨진 욕망이 완전히 다른 인물입니다. 겉으로는 형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싸우는 변호사지만, 실제 내면에는 형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이중 감정 구조는 인물을 더욱 인간적으로 만들고, 관객이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을 만들게 합니다. 시나리오 작가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인물 구조는 단순한 감정 묘사로는 부족합니다. 캐릭터의 선택은 항상 동기에서 출발해야 하며, 그 동기는 ‘감정의 진실’에 기반해야 설득력을 가집니다. 따라서 캐릭터를 설계할 때, “이 인물은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됩니다.
조연과 적대자의 전략적 활용법
좋은 영화는 주인공만 잘 만든다고 완성되지 않습니다. 서사의 입체감은 조연과 적대자를 얼마나 전략적으로 배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시나리오 작가들은 흔히 이를 ‘거울 캐릭터’와 ‘안티 테제 캐릭터’로 구분하여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 <제로에지>에서는 주인공 ‘헤일리’의 조력자이자 친구인 ‘릴라’가 바로 거울 캐릭터입니다. 릴라는 주인공과 비슷한 환경에서 전혀 다른 선택을 하며, 주인공이 직면한 문제의 또 다른 해석을 제공합니다. 이는 관객에게 “다른 선택도 가능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죠. 반대로, <더 라스트 프로토콜>의 빌런 ‘코르벨’은 주인공의 철학을 전면 부정하는 안티 테제 인물입니다. 그는 단순히 악한 존재가 아니라, ‘왜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는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적대자로 그려지며 서사에 철학적 무게를 더합니다. 조연과 적대자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을 반사하고 극적 긴장을 조율하는 역할을 합니다. 작가가 이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더 깊고 복합적인 감정 구조를 갖게 됩니다.
시나리오 작가의 시선에서 본 캐릭터는 단순한 성격 묘사 그 이상입니다. 인물은 변화, 욕망, 구조적 관계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서사의 핵심을 이룹니다. 2025년 영화 속 캐릭터들이 돋보였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설계 원칙이 잘 녹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스토리보다 캐릭터 구조에 먼저 주목해보세요. 스토리는 곧 인물에서 시작됩니다.